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는지, 건강한지, 별일 없는지 등등.
내 경우에는 주로 결혼하고 어떤지를 많이 묻는다.
“결혼한 지 이제 얼마나 됐더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몇 사람들은 형식만 질문일 뿐
자신의 대답을 가진채 묻는다. 바로 ‘답정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네”만 하라는 식)
답정너까진 그럴 수 있다 이해해도,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다.
대부분의 답정너는 부정적인 답을 원한다는 것이다.
왜 누가 잡혀 사는지, 자주 싸우는지 궁금한 걸까.
우린 누가 잡혀 살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는데,
그저 사랑하며 즐겁게 살아갈 뿐인데 말이다.
하루는 누군가 나한테 훈수 두길
결혼생활은 다 참고 사는 거라며 그렇게 하라길래
나는 결혼생활이 즐겁고 감사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참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열했다.
오늘도 누군가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던졌다.
정작 본인은 미혼인데 결혼에 대해 다 아는 듯 말한다.
결혼하면 잡혀 살기 때문에 미루고 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남편을 만났을 때
혹시 나한테 잡혀 산다고 느낀 적 있는지,
무언가를 참고 산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냐길래
오늘 이야기를 하니 “안타까운 사람을 만났구나” 한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들 말에 휩쓸려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남편 말처럼 안타까운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갇혀 사는 안타까운 사람이다.
대화를 하면 이야기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일방적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대화할 때 듣는 귀 없이 말하는 입만 갖고 있다.
넓은 세상을 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변화가 없다.
자신이 정한 답을 가진채 살아가기 때문에 반응도 없다.
그런 이들에게 굳이 입을 열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든다.
말해봤자 내 목만 아플 뿐이겠지.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마음을 답답하게 할 때
그 답답함에 휩쓸리지 않도록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연습만 해야겠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이유,
대화가 안되는 사람과 대화하려고 애쓰지 않기 위함이다.
들을 귀 없는 사람과의 무의미한 대화를 피하겠노라
다짐하는 N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