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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히시고 먹이시는 은혜
    소소한 생각/N의 흐름 2024. 3. 29. 04:03
    chatGPT 그림 / 들에 핀 백합화

     
    지난번에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을 보는데
    아기가 이제 제법 사람 같은 모습이라 너무 신기했다.

    처음에는 초음파로도 보이지 않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서 꿈틀거리고 있다니 신기할 수밖에.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팔이 자라고 있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는데
    마태복음 6장 말씀이 생각났다.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8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나는 평소처럼 살아가는데
    내 안에 새 생명이 자라난다는 게
    정말 하나님이 돌보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감상이 며칠 지나지 않아 유산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임신 후 매 순간 배가 너무 고팠는데
    며칠 전부터 배가 별로 안고팠다.

    그리고 며칠 전에 배가 정말 세게 찌릿해서
    “윽!”하고 소리 낸 통증이 세 번 정도 있었다.
    또 어제부터는 꼬리뼈가 조금 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지난주에 초음파를 봤고,
    아기는 주수에 맞는 크기로 잘 크고 있었고,
    심장도 정말 빠르고 힘차게 뛰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이쯤 되면(8주)
    잘못될 확률은 5%도 안된다고 하셨다.
    잘못될 아기는 이미 티가 난다고 걱정하지 말라셨다.

    그래서 이번주에 겪은 모든 통증은
    아기가 자라는 과정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유산 당일 오후에 출혈이 조금 있었다.
    임신 후 첫 출혈이었다.

    혹시 몰라서 병원에 바로 전화했는데
    당일 접수로 진료를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급히 병원으로 가면서 [임신 9주 출혈]을 검색하는데
    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고,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 안심이 됐다.

    내 순서가 되어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는데
    아기집도 보이고 아기도 잘 보여서 안심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런저런 질문만 하고
    아기 심장소리를 안 들려주셔서
    “아기는 괜찮은 거죠?”라고 물었더니
    심장이 안 뛴다고 하셨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자라긴 했는데
    성장이 멈춘 지 며칠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입을 틀어막고 울었는데
    얼마 못 가서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내 눈앞에 있는 모니터에 아기가 보여서
    아기가 죽었다는 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마음에 떠오른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 아기를 돌보신다는 약속 같았기에
    오늘 맞이한 일이 너무 거짓말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소리 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다가
    중간에 남편을 만나서 위로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그저 크리스마스에 받을 줄 알았던 선물을
    몇 달 더 뒤에 받을 뿐이라며 정말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그저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게 마음 아프다고 해서
    나도 마음을 잘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괜찮아지다가도
    초음파로 본 아기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면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심란한 마음은
    남편과 이런저런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됐다.
    남편이 차분하게 잘 달래줘서 큰 도움이 됐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마태복음 6장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그 말씀이 우리 아기가 아니라
    나한테 주신 말씀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내 아기가 정말 귀하고 소중했듯이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이번 임신으로 너무 자만했다.
    임신 시도하자마자 아기가 생겨서
    조금 어색하고 신기하고 뿌듯했을 뿐이었다.

    작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생명에 얼마나 간절할 수 있는지는
    유산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한 생명을 주시는 건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게 하시는 것도 깨닫게 하셨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교만한 나를
    풍성하게 채우시고 겸손하게 만들어가시는 것 같다.
    나를 못난 채로 두지 않고 다듬어주셔서 참 감사하다.

    하나님이 나를 유산하게 했단 말이 아니고
    너무 마음 아픈 상황 가운데 무너진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엄마의 자궁이 전부인 아기에게
    이 세상을 상상하도록 알려주는 건 정말 어렵겠지.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자랄 수 없는 나를 깨우치시고 돌보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과 그 은혜가 정말 크다.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
    공감대가 넓어진다는 것
    간절함과 감사함이 커진다는 것
    내가 슬픔에 잠기지 않고
    눈을 들어 이것들을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부부가 이번 일로
    하나님께 실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정말 큰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번 임신과 유산을 통해
    남편과 단순히 애정하는 관계 넘어서
    서로의 보호자이고, 하나로 묶인 부부이고 가족이란 걸,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정말 크게 깨달았다.

    아기가 일찍 떠나갔지만
    우리 부부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선물했고
    풍성한 경험과 깨달음과 감사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은혜인 것 같다.
    염려함으로 믿음이 작은 자가 되지 말고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고 싶다.

    이 모든 과정에 감사합니다.

    남은 과정이 잘 마무리되길
    건강 잘 회복하고 더 좋은 날을 맞이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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