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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자의 위로, 한 사람을 마주하는 위로
    소소한 생각/N의 흐름 2024. 4. 17. 20:25

    chatGPT 그림 / 따뜻한 위로

     

    유산 후 회복기를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첫 주는 시어머님과 남편의 돌봄덕에 요양생활을 했고
    둘째 주는 오랜만에 출근하며 다시 일상에 적응했고
    셋째 주는 출근에 적응을 마친 직장인이 되었다.
    (월요일은 피곤하고 금요일은 기쁘다면 그것이 직장인)

    오랜만에 돌아간 일상에서 사람들을 마주하는데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힘든 일을 지났다며 무한 위로를 전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맞아주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감사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편하고 고마운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맞아주는 사람이다.

    유산휴가를 마치고 오랜만에 출근하는 날,
    나를 대하는 팀원들이 괜히 어려울까 싶어서
    “너무 오랜만에 출근하려니까 엄청 오기 싫더라”하며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의 너스레에 웃음으로 답해주는 팀원들,
    “잘 왔어”라며 반겨주는 팀장님이 고맙다.

    물론 나를 위로해 주려고 벼른 사람들도 고맙지만,
    나는 이번 일을 슬픈 사연처럼 늘어놓는다거나
    어떤 감정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상태라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게 반갑지 않다.

    물론 나는 이번 일로 슬프고 힘들었지만,
    슬픔이나 힘듦을 이길 수 있었던 감사가 더 크기에
    굳이 이번 일을 나눈다면 감사를 나누고 싶다.
    그저 많은 것에 감사함을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나의 이런 마음이 불가능한 일이나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에게 “괜찮다”라고 말했는데,
    “괜찮을리가 있나”하며 계속 나의 슬픔을 끌어내려한다.
    어떤 감정을 강요받는 것 같아서 불편했지만
    나를 위한 마음이겠거니 생각하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비슷한 일을 경험해도 각자의 반응은 다를 수 있듯
    각 사람을 대하는 위로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라떼’가 꼰대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때는 말이야~~”라며 내 생각만 맞다고 하는 라떼)

    나는 그냥 가볍게 지나가고 싶다.
    그래서 이번 일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이 좋다.

    그저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넬 때
    상대방도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많은 말을 생략하고 웃으며 인사할 때
    많은 위로의 말과 그 마음까지 전해지는 순간,
    이 한 번의 인사가 내 안에 따뜻한 위로가 된다.

    감사하게도 우리 시댁 식구들이 이런 스타일이다.
    형님들은 나의 유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머리 한번 쓰다듬으며 주말 잘 보내라고 할 때,
    맛있는 과일 남편 주지 말고 혼자 다 먹으라고 할 때
    나에게 든든한 가족이 있음에 힘이 났다.

    그리고 주일에 마주친 목사님이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손을 건네고 짧은 악수에 진심을 담아주셨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짧은 악수만 나눴지만
    나를 위로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소중한 전우를 응원하는 마음이랄까)

    위로는 내가 아는 좋은 비법을 전수해 주는 게 아니라
    그저 토닥임, 아주 가벼운 토닥임이면 충분한 것 같다.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많은 것을 생략한 토닥거림 말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끄덕이는 고갯짓이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는 짧은 대답말이다.

    잘 이겨낸 이를 위해
    말없이 모른 척 지나갈 때,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할 때,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할 때,
    각자의 위로가 아닌
    각 상황에 맞는 위로를 전할 때
    우리는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마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로마서 12장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다.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즐겁다고 느낄 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슬프다고 느끼는 일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한다.

    나의 생각과 경험이 아닌,
    상대방을 마주 보며 마음을 같이 하는 것.
    그게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마주 보신다.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마주 보셨다.
    그러니 나도, 붙여주신 사람을 마주 보는 눈이 있길.
    한 사람을 마주 볼 때 전해지는 위로가 있길 바라본다.

    위로를 받으며 위로를 이해하는 N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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